붉은 소와 은박지의 편지
이중섭 — 황소, 은지화, 그리고 바다 건너로 보낸 그림
이어지는 이야기 3편읽는 시간 약 14분

1955년 1월,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한 화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는 아직 마흔이 되기 전이었고, 아내와 두 아들은 세 해째 바다 건너 일본에 있었다. 벽에는 붉은 바탕의 소가 걸렸고, 그 곁에는 담뱃갑에서 꺼낸 은박지 그림들이 놓였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그 은박지 가운데 몇 장을 한 미국인이 사들였고, 이듬해 그중 세 점이 뉴욕 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화가는 그 결정이 내려진 해의 9월, 서대문의 적십자병원에서 혼자 세상을 떠났다. 이중섭(李仲燮)이라는 이름을 우리는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소, 담뱃갑, 편지. 세 단어로 요약되는 삶이란 대개 요약하는 쪽의 게으름일 뿐이다. 올여름 대전시립미술관에는 그의 회화와 은지화, 엽서와 편지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세 장의 그림 앞에 차례로 서보기로 한다. 붉은 소 한 마리, 담뱃갑 은박지 한 장, 그리고 소달구지에 가족을 태우고 남쪽으로 가는 그림 한 장.
주름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든 소
소는 붉다. 정확히 말하면 배경이 붉고, 소는 그 붉음 속에서 누런 몸통과 흰 뿔을 드러낸 채 고개를 들고 있다. 화면은 작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황소」는 종이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26.5×36.7센티미터의 그림이고, 미술관의 소장품 해설은 붉은 색조 화면에 황소의 머리 부분을 확대해 그린 이 연작이 모두 네 점 전한다고 적는다. 해설은 이 그림을 "강렬한 붉은색을 배경으로 세파를 견딘 주름 가득한 황소의 진중하고 묵직한 모습을 거친 선묘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주름. 나는 그 단어에서 잠시 멈춘다. 이것은 젊은 소가 아니다. 무언가를 오래 견뎌 온 얼굴이다.
이중섭은 소를 일찍부터 그렸다.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의 작가 연보에 따르면 그는 1944년 평양에서 열린 6인전에 이미 소 그림을 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의 해설에서 그를 "일제강점기부터 '소'를 그려낸 민족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하고, 2016년 덕수궁 《이중섭, 백년의 신화》의 해설은 그가 "일제 강점기에도 민족의 상징인 '소'를 서슴없이 그렸고" 전쟁 후에는 "강렬한 의지와 자신감으로 힘찬 황소 작품들을 쏟아내었다"고 적는다. 식민지에서 소를 그리는 일과 전쟁 뒤에 소를 그리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니다. 앞의 소가 지켜야 할 무엇이었다면, 뒤의 소는 다시 일어서야 할 무엇이었다.
붉은 소들이 태어난 곳은 통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해설은 한국전쟁 뒤 1953년에서 1954년 사이 통영과 진주에서 다수의 「황소」와 「흰 소」 연작이 그려졌다고 밝힌다. 2016년 전시는 이 시기를 아예 "1953-54 통영: '소'의 걸음으로"라는 이름의 방으로 묶었다. 월남한 공예가 유강렬의 주선으로 통영의 나전칠기 전습소에서 강사로 일하던 때였다. 가족은 전해 여름 일본으로 떠났고, 그는 1953년 7월 일주일 동안 일본에 다녀온 뒤 혼자 남쪽 항구도시로 내려왔다. 그해 12월 통영에서, 이듬해 5월 진주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소들은 그 사이에 그려졌다. 가장 외로웠던 시기의 그림이 가장 힘이 세다는 것은, 이 화가에 대해 자주 이야기되는 역설이다.
소장품 해설은 이중섭이 "고분 벽화와 민화 등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것에 영감을 받아 표현주의적인 감각으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설명한다. 거친 선묘, 확대된 머리, 화면 밖으로 밀려나는 몸통. 소는 풍경 속에 서 있지 않고 보는 사람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다. 나는 이 소가 우는 것인지 숨을 고르는 것인지 끝내 정하지 못한다. 다만 붉은 배경이 노을이나 불이 아니라 소 자신에게서 번져 나온 온도처럼 보인다는 것은 안다. 주름 가득한 얼굴로, 세파를 견딘 채, 그래도 고개를 든 소. 그것이 1953년의 이중섭이 스스로에게 그려 준 초상이었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전시를 알리는 소식지에서 소가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주제였다고 짧게 적어 두었다. 미술관이 거기까지만 말한다면, 나도 거기서 멈추기로 한다.
가장 외로웠던 시기의 그림이 가장 힘이 세다는 것은, 이 화가에 대해 자주 이야기되는 역설이다.
담뱃갑 은박지에 새긴 삼백 장

은지화(銀紙畵)는 그림이라기보다 흔적에 가깝다. 담뱃갑 속 은박지를 반듯하게 펴고, 뾰족한 것으로 눌러 선을 새기고, 그 위에 물감이나 먹을 문질러 넣은 뒤 닦아내면 홈 안에만 색이 남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물고기와 아이들(은지화)」 소장품 해설은 이 과정을 "양담배갑 속의 은박지 종이를 반듯하게 편 다음 예리한 철촉필로 종이가 뚫어지지 않을 만큼 눌러 윤곽선을 그린 후, 검정이나 흑갈색의 물감, 혹은 먹물을 솜, 헝겊으로 문질러 선묘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기법이라고 설명한다. 그 작품은 15×9센티미터다. 해설은 "구겨진 자국은 물론 뜯겨진 부분의 자연스러운 선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적는다. 담뱃갑이었다는 사실을 그림은 숨기지 않는다.
시작은 궁핍이었다. 같은 해설은 이 기법이 "부산피난 시절, 회화재료가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우연히 시도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힌다.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의 연보는 아내와 두 아들이 6월 17일 일본으로 떠난 1952년에 은지화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한다.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기획한 우현정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전한 보도에 따르면, 그는 1953년 일본의 아내에게 은지화 70여 점을 건네며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2016년 덕수궁 전시의 해설은 "은지화는 이중섭이 창안한 새로운 기법의 작품"이며 "약 300점의 은지화를 제작했다는 증언이 있"다고 적는다. 삼백 장의 담뱃갑. 재료가 없어서 택한 방법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가 택한 언어가 되었다.
1955년 1월 18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은지화가 걸렸다. 이중섭미술관 연보는 이 전시에서 한 미국인이 은지화 10점을 비롯해 유화까지 사들였고, 뒷날 그중 은지화 3점을 뉴욕 근대미술관에 기증했다고 적는다. 그 미국인이 당시 주한 미국 문화원 쪽에서 일하던 아서 맥타가트(Arthur McTaggart)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공개한 소장품 데이터에 세 점은 정확히 남아 있다. 「낙원의 가족(Family in Paradise, Number 50)」 8.3×15.4센티미터, 「선경(Fairyland, Number 57)」 8.3×15.4센티미터, 「신문 읽는 사람들(People Reading the Newspaper, Number 84)」 10.1×15센티미터. 제작 연도는 모두 1950년에서 1952년 사이, 재료는 종이 위 금속박에 새김과 유채, 출처는 아서 맥타가트 기증, 소장 번호는 26.1956과 27.1956과 28.1956, 입수일은 1956년 3월 19일이다. 숫자들은 건조하다. 그러나 이 건조한 숫자가, 한국 화가의 작품이 그 미술관에 들어간 첫 기록이다.
연보는 1956년 1월 뉴욕 근대미술관이 소장을 결정했다고 적고, 같은 해 9월 6일 그가 서대문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간장염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적는다. 코리아 헤럴드는 2015년 이 세 점이 60년 만에 서울로 돌아와 전시되었을 때, 뉴욕 현대미술관의 소장 결정이 그의 사후 명성의 출발점이었으며 그 전까지 은지화는 값싸고 외설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고 썼다. 이중섭미술관의 전은자 학예연구사는 은지화가 비록 작은 작품이지만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서귀포시 공립미술관의 작가 소개는 은지화가 "아이들과 게, 가족 등 서귀포 피난 생활과 관련이 깊은 소재와 능숙한 이중섭의 데생력이 결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담뱃갑 은박지 위에 그는 바다 건너의 가족과 지난해의 서귀포를 새겼다. 은박지는 구겨졌고, 그림은 남았다.
재료가 없어서 택한 방법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가 택한 언어가 되었다.
소달구지는 아직 그림 속에 있다

소가 다시 나온다. 이번에는 붉은 소가 아니라 누런 소이고, 고개를 든 소가 아니라 앞으로 걷는 소다. 남자가 앞에서 소를 끌고, 소 뒤의 달구지에는 여자와 두 아이가 타고 있다.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누리집에 실린 미술평론가 오광수의 글 「이중섭과 서귀포」는 이 그림을 소달구지 위에서 여인과 두 아이가 꽃을 뿌리고 비둘기를 날리며 남쪽으로 이주하는 장면으로 읽는다. 피난이 아니라 소풍처럼 보이는 이주. 오광수는 이중섭에게 서귀포가 지상의 유토피아라는 공간의 의미를 지녔다고 쓴다. 1951년 1월, 그는 가족과 함께 제주 서귀포에 닿아 1.4평의 곁방 한 칸에서 한 해 가까이 살았다. 그림 속의 남쪽은 아마 그곳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1954년의 그림이다. 종이에 유채, 29.5×64.5센티미터. 가족이 일본으로 떠난 지 두 해가 지난 뒤에 그려졌다. 같은 구도의 그림이 편지 안에도 있다. 이중섭이 1954년 12월 큰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의 그림이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변종필은 이 편지 그림이 완성작 「길 떠나는 가족」의 바탕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편지에서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썼다. "아빠가 오늘 엄마, 태성이, 태현이가 소달구지를 타고 아빠는 앞쪽에서 소를 끌면서 따스한 남쪽 나라로 가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을 먼저 그리고 설명을 붙인 것이 아니라, 설명을 쓰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처럼 읽힌다. 아이에게 보여 주려고 그린 그림이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편지는 많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부인에게 보낸 편지」는 종이에 잉크와 색연필로 그린 26.5×21센티미터의 편지 그림이다. 소장품 해설은 이 편지가 한국전쟁 무렵 일본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여러 그림 편지 가운데 하나이며, 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인 동시에 그의 삶의 조건과 작업의 관계를 밝혀 주는 자료라고 설명한다. 편지 안에는 가족을 그리는 화가 자신과 가족을 껴안은 화가 자신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는 아내를 남덕이라 불렀다. 1945년 원산에서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결혼하며 지어 준 한국 이름이다. 미술사학자 최열은 이중섭의 편지 그림이 특정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마음그림이면서 제한된 재료로 빼어난 조형성을 갖춘 보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2016년 덕수궁 전시의 해설은 남아 있는 편지가 약 70통, 150매에 이른다고 적는다.
편지는 대체로 앞날을 이야기한다. 전시가 잘될 것이고, 곧 갈 것이고, 함께 살 것이라고. 1955년 1월 서울 전시가 끝난 뒤 그는 대구로 내려갔고, 그해 8월 서울로 올라와 병원에 입원했다. 연보는 1956년 9월 6일 밤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한다. 소달구지는 끝내 남쪽에 닿지 않았다. 1953년 7월 일본에서의 일주일이 부부가 함께 보낸 마지막 시간이었고, 야마모토 마사코는 도쿄에서 2022년 8월 백한 살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길 떠나는 가족」을 다시 본다. 꽃과 비둘기와 소와 달구지. 이것은 도착의 그림이 아니라 출발의 그림이고, 출발조차 아직 그림 속에만 있다. 그래도 남자는 소를 끈다. 편지의 마지막 줄이 늘 그렇듯이, 곧 간다고.
그림을 먼저 그리고 설명을 붙인 것이 아니라, 설명을 쓰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처럼 읽힌다.
대전에서 서귀포까지 — 이중섭을 따라가는 두 도시
이중섭의 회화와 은지화, 엽서화와 편지화를 한자리에서 보려면 올가을까지는 대전이 가장 가깝습니다. 그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서귀포의 집과 거리는 지금도 남아 있지만, 이중섭미술관 본관은 시설 확충 공사로 2027년 3월 재개관 예정이므로 임시 전시공간의 운영 상황을 공식 페이지에서 먼저 확인하세요.
- 대전시립미술관 3·4전시실 — 《MMCA 이건희컬렉션: 이중섭》회화 109점과 아카이브 30점 — 소·가족·닭·게·물고기 도상을 회화·은지화·엽서화·편지화로 나란히 비교
2026년 7월 23일부터 9월 27일까지, 성인 500원. 3월부터 10월까지는 10시부터 19시까지 개관, 국립현대미술관·이중섭미술관 협력 순회전.
공식 안내 → - 이중섭 전시공간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이중섭로 33)본관 재개관 전까지 운영하는 임시 전시공간의 이중섭 아카이브 전시
9시부터 18시까지, 무료, 월요일·1월 1일·설·추석 휴관. 본관은 시설 확충 공사 중이며 2027년 3월 재개관 예정이므로 방문 전 공지사항을 확인하세요.
공식 안내 → - 이중섭 거주지와 이중섭거리 (서귀포시 이중섭로 27-3 일대)1951년 가족 네 사람이 한 해 가까이 살았던 1.4평 곁방(1997년 복원)과 1996년 지정된 이중섭거리
「길 떠나는 가족」과 은지화의 게·아이들·바다가 나온 장소. 오광수가 '지상의 유토피아'라고 부른 서귀포를 걸어서 확인합니다.
공식 안내 →
공식 근거: 대전시립미술관 — 《MMCA 이건희컬렉션: 이중섭》 전시 페이지 / 대전시립미술관 — 관람시간·현재전시 / 이중섭미술관 — 관람안내 / 이중섭미술관 — 미술관안내(연혁·거주지 복원·재개관 예정) / 제주의소리 — 이중섭미술관 신축 착수, 2027년 2월 준공 목표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이 글의 사실과 해석은 아래 전문가·기관의 공개 자료에 근거합니다. 자세한 해설은 각 원본에서 확인하세요.
- 소장품 해설 「황소」(1950년대) · 국립현대미술관 (출처표기)
-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2022) 전시 해설 · 국립현대미술관 (출처표기)
- 《이중섭, 백년의 신화》(2016, 덕수궁) 전시 해설 · 국립현대미술관 (출처표기)
- 이중섭미술관 작가연보 ·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출처표기)
-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소식지(2022.8) · 국립현대미술관 (출처표기)
- 소장품 해설 「물고기와 아이들(은지화)」 · 국립현대미술관 (출처표기)
- 우현정 학예연구사 전시 설명 (뉴시스 2022.8.12 보도) · 국립현대미술관 / 뉴시스 (출처표기)
- MoMA 소장품 공개 데이터(Artworks.csv) — Joong Seop Lee 3점 · The Museum of Modern Art (출처표기)
- The Korea Herald, 「Lee Jung-seop's silver foil drawings return」(2015) · The Korea Herald (출처표기)
- 전은자 학예연구사(이중섭미술관) 인터뷰 (제주의소리) · 이중섭미술관 / 제주의소리 (출처표기)
- 스마트 서귀포시 공립미술관 작가 소개 「이중섭」 · 서귀포시 (출처표기)
- 오광수, 「이중섭과 서귀포」 ·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출처표기)
- 변종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칼럼 · 중부일보 (출처표기)
- 고대신문, 「희망으로 붓을 쥐고 사랑으로 채색한 이중섭을 그리다」(2016, 태현에게 보낸 편지 원문) · 고대신문 (출처표기)
- 소장품 해설 「부인에게 보낸 편지」 · 국립현대미술관 (출처표기)
- 최열(미술사학자), 『이중섭, 편지화』 관련 발언 (경향신문 2023.8.11) · 경향신문 (출처표기)
- 경향신문, 「이중섭의 '소중한 남덕' 야마모토 여사 별세」(2022.8.30) · 경향신문 (출처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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