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매주 하나의 미술사 이야기인스타그램KOEN
Vol. 72026-07-07지난 호 보기

빛과 그림자 사이 ― 레오나르도 다 빈치, 경계에 선 사람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서, 그는 선을 지우고 연기를 남겼다

이어지는 이야기 3편읽는 시간 약 8분

모나리자
이야기 시작

어떤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산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들이 그렇다. 그는 윤곽선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는 원래 또렷한 경계선 같은 것이 없다고, 사물과 사물 사이는 언제나 조금씩 번져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얼굴들은 선이 아니라 그림자로 그려졌고, 어깨는 배경 속으로 조용히 녹아들었다. 이번 편에서는 세 점의 그림 앞에 선다. 한 점은 유리 상자 안에서 홀로 빛나고, 한 점은 벽에서 천천히 사라지고 있으며, 나머지 두 점은 파리와 런던에서 서로를 마주 본 채 떨어져 있다. 미술관과 미술사학자들이 실제로 확인해준 것만을, 조용히 따라가 보려 한다.

01

선이 없는 얼굴

루브르에서 가장 큰 방, 살 데 제타의 한가운데에 그 그림은 있다. 유리 상자 안에, 홀로. 루브르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은 1966년부터 이 방에 걸렸고, 2005년부터는 방 한복판의 보호 유리 케이스 안에 놓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림이 그려진 포플러 나무판이 세월과 함께 휘면서 균열이 생겼고, 그래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는 유리 케이스 안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이, 나무 한 장의 뒤틀림을 견디며 거기 있다.

그림 속 여인은 피렌체의 비단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 리자 게라르디니로 여겨진다. 루브르는 그녀가 먼 풍경을 배경으로 그려졌다고 말한다. 반쯤 몸을 튼 자세, 겹쳐진 두 손, 그리고 그 미소. 루브르는 이것을 다만 그 유명한 수수께끼 같은 미소라고 부른다. 설명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무도 확언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이 그림이 오래 사는 방식일 것이다.

루브르와 스마트히스토리가 공통으로 짚는 것은 기법이다. 스푸마토.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이라는 뜻의 이 말은, 유약을 얇게 겹쳐 발라 윤곽을 흐리고 빛에서 어둠으로의 이행을 부드럽게 만드는 방법을 가리킨다. 레오나르도 자신이 이것을 선도 경계도 없이, 연기처럼이라고 묘사했다고 전한다. 새로 이탈리아에 들어온 유화 물감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빨리 마르는 템페라와 달리, 유화는 투명한 층을 몇 번이고 겹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에는 선이 없다. 눈가와 입가에는 또렷한 경계 대신, 빛과 그림자가 서로에게 스며든 흐릿한 영역이 있다. 우리가 그 미소를 붙잡으려 할수록 그것이 미끄러져 나가는 것은, 어쩌면 붙잡을 윤곽선 자체가 처음부터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얼굴을 그린 것이 아니라, 얼굴 위로 지나가는 빛을 그렸다.

그는 얼굴을 그린 것이 아니라, 얼굴 위로 지나가는 빛을 그렸다.

소장 루브르 박물관, 파리 (살 데 제타) · 전시 일정 →작품 자세히 보기 →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Musée du Louvre (공식 해설) · 루브르 박물관 / Smarthistory (Dr. Beth Harris · Dr. Steven Zucker) · Smarthistory

02

사라지면서 남는 것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수도사들이 함께 식사하던 방, 그 벽에 «최후의 만찬»이 있다.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주문이었다. 예수가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리라 말한 바로 그 순간, 식탁을 따라 번져 가는 동요를 레오나르도는 벽 하나에 담았다.

문제는 그가 벽화를 그리는 정통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스마트히스토리의 설명에 따르면, 조토가 아레나 예배당에서 했던 것처럼 젖은 회벽 위에 빠르게 그리는 프레스코 대신, 레오나르도는 유화와 템페라를 섞어 마른 벽 위에 그리는 방식(아 세코)을 택했다. 마른 벽은 물감을 빨아들이지 못했다. 그 결과, 완성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림은 벽에서 벗겨지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프레스코의 속도가 그에게 맞지 않았을 것이다. 젖은 회벽은 마르기 전에 서둘러 그려야 하고, 한번 칠하면 고치기 어렵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고치는 사람이었다. 스푸마토를 위해 층을 겹치고, 물러섰다가 다시 다가가고,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 느린 방식을 벽에 옮기려는 순간, 그림의 수명이 걸리고 말았다.

그림은 수백 년을 훼손과 덧칠 속에 견뎠다. 1999년에 끝난 20년에 걸친 대대적인 복원 이후, 오늘 우리가 보는 표면의 절반 이하만이 레오나르도의 원본이라고 전한다. 복원가들은 되살릴 수 없는 부분에 베이지색 수채를 채워 넣었다. 지금도 그림은 연약해서, 관람객은 소규모로 나뉘어 15분 동안만 그 앞에 설 수 있다. 15분. 사라져 가는 것을 지키기 위해 정해진 시간. 그러나 그 절반쯤 남은 벽 앞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순간의 동요를 읽어낸다. 어떤 그림은 온전히 남아서가 아니라, 사라지는 중이어서 더 오래 기억된다.

어떤 그림은 온전히 남아서가 아니라, 사라지는 중이어서 더 오래 기억된다.

소장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밀라노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Smarthistory (Dr. Beth Harris · Dr. Steven Zucker) · Smarthistory / Britannica (Last Supper 항목) · Encyclopædia Britannica

03

서로를 마주 본 두 개의 동굴

암굴의 성모
암굴의 성모 ·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그림이 두 점 있다. 하나는 파리 루브르에, 하나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 있다. 구도는 거의 같다. 바위가 드리운 동굴, 무성한 식물, 그 안에 모여 앉은 네 인물. 성모 마리아, 아기 세례 요한, 아기 예수, 그리고 천사. 내셔널 갤러리의 해설은 이들이 침묵 속에서 서로 교감하며, 천사가 이 장면의 천상의 증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왜 두 점일까. 1483년 밀라노의 무염시태 신심회가 제단화 중앙 패널로 이 그림을 주문했으나, 대금을 둘러싼 분쟁이 있었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미술사가는 루브르 버전(약 1483~1486년)을 먼저 그려진 것으로 보고, 런던 버전을 나중 것(약 1491/2~99년, 그리고 1506~08년)으로 본다. 분쟁이 이어지는 동안 레오나르도가 먼저 그린 그림을 더 높은 값에 다른 이에게 팔고, 신심회를 위해 또 한 점을 그렸으리라는 설명이다.

두 그림의 차이는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런던 버전에서는 천사가 더 이상 어린 세례 요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도, 그림 밖 관람자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반면 루브르 버전에서는 천사가 요한을 가리키며 우리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손짓 하나, 눈길 하나의 차이. 그것만으로 두 동굴의 공기가 달라진다. 꽃도 다르다. 루브르의 식물은 식물학적으로 정확하고, 런던 쪽은 상상으로 지어낸 것들이라고 전한다.

내셔널 갤러리는 레오나르도가 인물의 가장자리를 흐릿하게 처리해 그들이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도 그는 선을 지운다. 동굴의 어둠과 인물의 몸이 만나는 자리에는 경계 대신 그림자가 있다. 최근의 세척 이후, 내셔널 갤러리의 큐레이터 루크 사이슨은 드러난 화질로 보아 런던 버전이 대부분 레오나르도 본인의 손에서 나왔으며, 공방 조수들의 참여는 이전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개의 동굴은 지금 서로 다른 도시의 벽에 걸려, 같은 침묵을 각자의 방식으로 지키고 있다.

손짓 하나, 눈길 하나의 차이. 그것만으로 두 동굴의 공기가 달라진다.

소장 루브르 박물관, 파리 / 내셔널 갤러리, 런던 (두 버전) · 전시 일정 →이 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공식 해설 · 큐레이터 Luke Syson 코멘트 포함)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 Smarthistory (Dr. Beth Harris · Dr. Steven Zucker) · Smarthistory

맺음말
세 점의 그림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어디에도 또렷한 윤곽선이 없다는 것.모나리자의 미소에도, 최후의 만찬의 흔들리는 얼굴들에도, 암굴 속 어둠에서 떠오르는 몸들에도, 레오나르도는 선 대신 그림자를 두었다.그는 화가이면서 동시에 물과 빛과 인체를 관찰하던 사람이었고, 관찰할수록 세상에는 깔끔한 경계선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그래서 그의 그림은 완성보다 지속을 택한다.나무판은 휘고, 벽은 벗겨지고, 같은 그림은 두 도시로 나뉘었지만, 그 흐릿한 경계 안에서 무언가는 여전히 붙잡히지 않은 채 살아 있다.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답이 아니라, 답을 미루는 방식으로 오래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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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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