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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 Inwang jesaekdo (Scene of Inwangsan Mountain After Rain)

정선(겸재) · 1751 (조선 영조 27년)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이 미술관 전시 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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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갠 인왕산을, 일흔여섯 노인이 하루 오후에 그렸다

핵심만

  • 1751년, 정선 나이 76세. 남아 있는 유작 400여 점 가운데 가장 큰 그림이다
  • 중국 그림을 본뜨지 않고 실제 산을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의 대표작
  • 산 아래는 내려다보고 산 위는 올려다보는, 시점이 둘인 구도
  • 먹을 가득 묻힌 큰 붓을 반복해 내리그어 비에 젖은 암벽의 무게를 냈다

작품 읽기

무엇을 그렸나

비가 그친 뒤의 인왕산입니다. 화면 위쪽은 젖은 바위가 가득 차 있고 아래쪽에는 나무와 숲, 골짜기를 채운 안개가 깔려 있습니다. 종이에 먹으로만 그렸고 크기는 세로 79.2cm, 가로 138.2cm입니다. 1984년 8월 6일 국보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합니다.

어떻게 그렸나

국가유산청 설명은 이 그림의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고 짚습니다. 산 아래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으로, 산 위쪽 바위는 멀리서 올려다보는 눈으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화면 앞에 서면 산이 바로 앞에 다가와 선 듯한 느낌이 듭니다. 비에 젖은 뒤편 암벽은 먹물을 가득 묻힌 큰 붓을 반복해서 아래로 내리긋는 방식으로 그렸습니다. 무겁고 축축한 덩어리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가까이 있는 능선과 나무는 가는 붓질과 짧게 끊어 찍은 점으로 처리했습니다. 같은 화면 안에서 붓이 두 가지로 갈립니다.

왜 중요한가

그때까지 조선의 산수화는 대체로 중국 그림의 구도와 형식을 빌려 그렸습니다. 정선은 실제로 인왕산을 보고 그렸고, 화법 자체도 우리 산의 생김새에 맞췄습니다. 이 방향을 진경산수화라 부르고, 이 그림은 그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그림 아래 저 집은 누구 집인가

화면 왼쪽 아래에 기와집 한 채가 있습니다. 이 집을 두고 미술사학자 최완수는 정선의 평생지기였던 시인 이병연(1671~1751)의 집으로 보았습니다. 병으로 누운 벗이 낫기를 바라며, 비가 갠 인왕산에 그 마음을 실었다는 해석입니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여기에 근거를 보탰습니다. 그림에 적힌 화제 '신미윤월하완'에서 신미년은 1751년, 그해 윤달은 5월, 하완은 하순을 뜻합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윤5월 19일부터 25일 오전까지 비가 내렸으니 25일 오후에 그렸으리라는 추정입니다. 이병연은 그해 5월 29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만 이 해석에는 이견도 있습니다. 집을 이병연의 것으로 특정할 명확한 사료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학설이라는 점은 함께 알아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삼성 이건희 회장 유족의 기증

이 그림은 오랫동안 개인 소장품이었습니다. 2021년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문화재와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국가유산청 기록에도 소유자는 국유, 관리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벽에 걸려 있던 국보를 이제 누구나 박물관에서 볼 수 있게 된 셈입니다.

400여 점 가운데 가장 큰 그림

정선은 여든넷까지 살면서 많은 그림을 남겼습니다. 지금 전하는 것만 400여 점입니다. 그 가운데 이 그림이 가장 큽니다. 일흔여섯 나이에, 붓을 가장 크게 휘두른 그림이 이것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인왕제색도」는 무엇을 그렸나?

비가 그친 뒤의 인왕산입니다. 화면 위쪽은 젖은 바위가 가득 차 있고 아래쪽에는 나무와 숲, 골짜기를 채운 안개가 깔려 있습니다. 종이에 먹으로만 그렸고 크기는 세로 79.2cm, 가로 138.2cm입니다. 1984년 8월 6일 국보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합니다.

「인왕제색도」는 어떻게 그렸나?

국가유산청 설명은 이 그림의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고 짚습니다. 산 아래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으로, 산 위쪽 바위는 멀리서 올려다보는 눈으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화면 앞에 서면 산이 바로 앞에 다가와 선 듯한 느낌이 듭니다. 비에 젖은 뒤편 암벽은 먹물을 가득 묻힌 큰 붓을 반복해서 아래로 내리긋는 방식으로 그렸습니다. 무겁고 축축한 덩어리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가까이 있는 능선과 나무는 가는 붓질과 짧게 끊어 찍은 점으로 처리했습니다. 같은 화면 안에서 붓이 두 가지로 갈립니다.

「인왕제색도」는 왜 중요한가?

그때까지 조선의 산수화는 대체로 중국 그림의 구도와 형식을 빌려 그렸습니다. 정선은 실제로 인왕산을 보고 그렸고, 화법 자체도 우리 산의 생김새에 맞췄습니다. 이 방향을 진경산수화라 부르고, 이 그림은 그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인왕제색도」는 그림 아래 저 집은 누구 집인가?

화면 왼쪽 아래에 기와집 한 채가 있습니다. 이 집을 두고 미술사학자 최완수는 정선의 평생지기였던 시인 이병연(1671~1751)의 집으로 보았습니다. 병으로 누운 벗이 낫기를 바라며, 비가 갠 인왕산에 그 마음을 실었다는 해석입니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여기에 근거를 보탰습니다. 그림에 적힌 화제 '신미윤월하완'에서 신미년은 1751년, 그해 윤달은 5월, 하완은 하순을 뜻합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윤5월 19일부터 25일 오전까지 비가 내렸으니 25일 오후에 그렸으리라는 추정입니다. 이병연은 그해 5월 29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만 이 해석에는 이견도 있습니다. 집을 이병연의 것으로 특정할 명확한 사료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학설이라는 점은 함께 알아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해설 더 읽기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국보 정선 필 인왕제색도 ·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 표시)
이미지: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최종 업데이트 2026-09-12